웹에서 보기 샤덴프로이데, 타인의 고통은 나의 행복? 샤덴프로이데 Schaden Freude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질투심에 스트레스를 받는 인간의 심리를 잘 나타낸 속담입니다. 그런데 독일에는 한국 속담과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샤덴프로이데는 'Schaden' (고통)과 'Freude' (기쁨)을 합성한 단어로, 상대가 봉변을 당하거나 망가질 때 느끼는 쾌감을 의미합니다. 타인의 불행을 엿보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인간 본연의 본성 중 하나이지만, 문제는 그런 성향이 심해질 경우에는 도리어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실제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을 탐닉하며 즐기는, 즉 ‘샤덴프로이데’를 강하게 느끼는 학생일수록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기분을 낫게 하고자 애쓰는데, 이 때 남의 불행을 보며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지인이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기쁨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평소 그를 부러워하는 정도 또한 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지인이 5달러를 줍는 장면과 비오는 날 지인이 물웅덩이 앞에 있다가 지나가는 택시로 인해 온 몸을 홀짝 적게 된 상황을 마주하였는데요, 평소 지인을 부러워하는 정도가 큰 사람일수록 상대의 불행에 더욱 큰 기쁨을 느꼈던 것입니다. 타인에게 초연해지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행복과 불행해 초연하다는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굳이 타인의 상황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3 문제는 이 세상에는 자존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상대를 비웃기만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노력을 할 때면 우리를 막아서며 '어차피 안되는 거 해서 뭐해.'를 남발하며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고갑니다. 이를 우물안 개구리 신드롬(Frog in the well syndrome)이라고 부르는데요, “내가 우물안에 있으니까 너도 우물 밖 세상으로 탈출하지 말고 나랑 같이 우물안에 있자!”고 외치는 패배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입니다. 못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도 못나길 바란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경제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 취업을 하지 못한 실업자가 많아질 때 불행해지는 반면, 취업에 실패한 실업자는 자신의 주변에 자신과 같은 실업자들이 많아질 때 행복해졌다고 합니다.4 무릇 인간은 내가 불우한 처지에 있을 때 남도 불우하기를 바라는 습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질 나쁜 친구들, 발전 의지가 없는 일터의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동류집단압력(Peer Pressure)이라 불리는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 자신의 곁에서 재빨리 떼어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랜 정이 든 사람에게 그런 결심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 때 우리의 인생은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발견되는 샤덴프로이데의 유익함 지금까지 샤덴프로이데의 부정적인 면만 언급하였는데요, 사실 모든 현상에는 어두움이 있다면 밝음도 있는 법입니다. 샤덴프로이데는 짓궂고 못된 감정임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을 역동적이고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는 자존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상대를 비웃기만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노력을 할 때면 우리를 막아서며 '어차피 안되는 거 해서 뭐해.'를 남발하며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고갑니다. 이를 우물안 개구리 신드롬(Frog in the well syndrome)이라고 부르는데요, “내가 우물안에 있으니까 너도 우물 밖 세상으로 탈출하지 말고 나랑 같이 우물안에 있자!”고 외치는 패배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입니다. 일례로 유명 인플루언서가 큰 사고를 일으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생방송으로 사과문을 낭송할 때에는 알게 모를 희열감과 쌤통의 기분을 느낍니다. 부자 동네에서 대학 부정입시를 치룬 학생의 비리가 적발되어 학생의 학위가 박탈되고 부모가 감옥을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접할 때에도 쾌감을 느낍니다.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그런 소식을 접할 때면 웃음이 나오며 스트레스가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샤덴프로이데는 인간의 고유한 본능적 감정이며, 그것을 느낀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오늘 날의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타인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샤덴프로이데적 감정을 무턱대고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는 일이며, 본능을 억압하여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샤덴프로이데가 '도덕적'이거나 '권장되는' 반응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런 세상의 모습들을 보면서 소소한 쾌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그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적 탈출구가 될 수도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결국에는 적당한 질투와 적당한 쾌감은 인생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샤덴프로이데적 감정에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타인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며 자기 자신의 삶을 파괴적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그 균형점의 올바름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오늘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구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피드백 남기러 가기 > 구독하기 > 지난 뉴스레터 다시보기 > 친구에게 알리기 * 위 링크 텍스트는 예시입니다. 실제로 동작하게 하려면 URL을 링크로 삽입하세요. 발행인 | 발신자 이메일 주소 | 수신거부 Unsubscribe